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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의 철학 정리를 통해 태권도의 미래를 계획하자!

김일영 관장의 태권도 미래에 대한 고찰(2부)
국제태권도신문 | 2018/08/15 01:39

김일영(고양시태권도협회 부회장, 공인 8단)

본 칼럼은 유년 시절부터 오직 태권도인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민초 사범으로써 감히 태권도 국정과제의 발표에 대의적 소신과 염려 그리고 조심스런 마음으로 사견을 밝혀 본다.

 

■태권도의 근본 철학 정리가 태권도의 올바른 시작이다.


깊은 강물이나 바닷물은 살아 있으되 흔들림 없이 유유히 제 할 일을 한다. 흔들림 없이 살아있는 그 근본의 물이 태권도 철학이요 사상이다. 흔들림 없는 근본 태권도 사상이 없다면 일렁이는 물결이나 파도가 온전하게 존재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국기원 자료실의 태권도 역사와 기원에는 다음과 같이 발표되어 있다. “태권도는 단군 이래 우리 민족과 오랜 역사를 같이 해 온 한국 전통 무예이다. 한국 무예의 발달은 기원전 2333년 한반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건국되면서 본격화되었다.”


또한 세계적인 태권도의 종주국인 태권도 흰 도복과 띠에 대한 설명으로 음기(陰氣)와 양기(陽氣)로 띠는 단전(丹田)강화에 도움 된다고 하는 이론의 근거인 중국 역경의 음양오행설의 원리로 설명되고 있다.


단전 (丹田)이란 단어 또한 중국 도교에서 주장되는 신체의 부위에 대한 명칭이다. 태권도의 위계에서 수련 단계를 아홉 단계로 나눈 것 역시 중국의 역경(易經)이 시조임에 틀림없다.


홍익인간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건국이념이며 교육부의 교육이념이기도 하다. 또한 홍익인간은 세계 태권도 종주국의 기원이며 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태권도의 기술에 우리나라의 건국이념과 동양사상에 근간을 둔 구체적인 정신철학의 언어들이 함께하지 못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태권도의 만년대계를 위해서라도 동양사상과 홍익인간이라는 중심축을 심도 있게 깊이 연구하여 훌륭한 종주국의 태권도 철학 정신이 꽃피울 수 있어야 한다. 철학과 사상의 뿌리내림이 5대 목표의 첫 출발이며 태권도 위상과 정체성 확립의 시작이 될 것이다. 오늘 날 송사가 만연하여 법원을 오가는 태권도 안에 위상과 정체성이 확고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엄산철벽(嚴山鐵壁)의 철옹성에 갇혀버린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요 자화상이다.


■철학적 고찰(哲學的 考察)없는 태권도의 역할은 반(半) 토막이다.


실증적 역사를 찾듯 태권도 철학의 발원지를 찾아나서야 하며 백성들과 함께한 종교와 사상은 태권도 철학의 뿌리일 수밖에 없다. 태권도의 수련 과정 속에 불교나 유교의 중심적 사상이 우리나라 고유의 홍익인간 사상과 함께 융합되어 있지 않다고 단정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정신적 영향권인 인도와 중국 그리고 한국이 동양사상의 발원지이며 태권도 중심 철학의 뿌리이다. 태권도는 동양사상의 불교와 유교 그리고 홍익인간의 한국 사상이 철학의 중심축이다.


그동안 태권도계에서는 철학과 사상에 대한 구체적으로 정리 된 교본은 없었다. 이제는 태권도계가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바르게 우뚝 서기위한 산고를 받아들이며 과감한 용기로 정부의 물음과 역사 앞에 화답해야 할 차례이다.


태권도의 원류인 동양사상을 정리 해 보면 다음과 같다.


홍익인간이란 사람을 이롭게 하며 인류공영이라는 민주주의 기본정신과 부합하고 기독교의 박애정신 그리고 유교의 인(仁)과 불교의 자비심과도 상통되는 모든 인류의 최상승적 이상이라는 데서 철학적 사상의 구심점을 찾아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교육이념인 홍익인간은 교육이 길러야 할 인간상을 제시하였으며 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치적 덕목에 대한 명명백백한 규정인 것이기에 태권도의 도(道)사상과 조금도 다를 수 없는 것이다.


불교의 깨달음인 불이중도(不二中道)란 양쪽에 치우치지 않음이 바른 길이며 최종에는 자신의 참 마음을 밝혀 원융무해 함에 이르러야 하기에 불이법이라고도 한다. 불교의 정수는 깨달음이며 깨달음을 구하고자 향하면 어긋남을 대혜종고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대혜종고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스님들이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수행하며 공부하는 간화선이라는 방편을 창시하신 분이다. 그는 방장실로 누군가 자신을 찾아오면 죽비를 들고 “죽비라고 해도 안 되고 죽비가 아니라고 무시해서도 안 된다. 말을 해도 안 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안 된다. 생각해도 안 되고 헤아려도 안 되며 소매를 떨치고 곧장 가 버려도 안 된다. 어떻게 하더라도 안 된다!”


누구든지 대혜의 이 말에 걸림 없이 자유롭다면 자신의 참 마음이 들어났다는 깨달음의 첫 관문을 통과했음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사실 평생을 수행하는 것과 온전한 태권도인이 평생을 수련하는 것과 조금의 차이도 없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불이의 체험으로 통 밑이 쑥 빠져서 걸림이 없는 대혜의 경지를 우리 태권도인들도 체험 할 수 있어야 한다.


유교의 중용(中庸)이란 개념과 의미에 대해서 여러 가지 내용들이 매우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저명한 것이 성리학자 주자의 주석이다. 주자의 주석에 의하면 “중(中)이란 기울어지거나 의지하지 않고 지나치거나 모자라지도 않는 것이라 했고 용(庸)은 평상(平常)함을 뜻하니 본분을 지켜 괴이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 정의했다.”


동양사상을 이렇게 볼 때 결국 태권도의 철학은 중도(中道). 중용(中庸). 홍익인간(弘益人間)에서 정립되어야 함은 지리적 환경적 종교적 문화적 역사적 필연이다.


■품새 일여(一如)는 불교사상과 문화로 만들어진 정수(精髓)의 결과물


일여는 신라 원효 대사의 사상인 마음과 몸이 하나(一心)이며 점, 선, 원 또한 하나이다. 그러므로 본(本) 채(體) 용(用)이 하나여서 삼독을 벗어난 무아의 경지에 이르러야 함을 목적으로 한다.


전 국기원 연수원 품새 교육을 하셨던 이종관 사범님의 태권도 품새 일여의 설명에 의하면 “품새 일여의 명칭과 일여의 정신적 철학에서 불교의 사상과 정수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진행선 또한 불교의 만(卍)자를 따라서 공격과 방어의 기술들을 수련하도록 만들었다”라고 했다. 태권도를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의 최고위 연마하고 단련하는 수련 체계가 마지막 품새 일여(一如) 품새이다.


품새를 진행하는 자와 품새의 동작이 일체가 되어 불교에서 말하는 하나의 경지가 이루어지는 여여(如如)함이 주 목적이다. 그리고 그 품새의 의미는 다름 아닌 입신의 경지여야 한다는 것이 품새 일여인 것이다.


원효의 중심사상인 일심사상에서 일심이란 일여와 동의어이며 모든 진리는 결국 하나의 진리를 향해 있다는 말이다. 또한 원효의 일심(一心)사상은 사실 신라의 고승 원효가 특정한 것은 아니다.


불교의 중심어록인 마조어록에 보면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상승의 일심(一心)법을 전하여 그대들을 깨닫게 하였다.”라는 구절이 있다.  결국 원효의 일심 사상은 그가 일심에 대하여 깨달음을 향한 방편으로 집중하였던 결과물일 뿐이며 이전부터 불교의 근본사상인 것이다.


품새 일여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의 수승한 명칭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불교와 태권도 사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파사현정을 이해하는 태권도인이라면 태권도의 깊이를 오해한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대적함 외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정부에서 태권도를 온전히 살려내기 위해서는 근본의 뿌리를 버리고 말단을 쫒는 어리석음에 들지 않는 안목을 확장해야 할 것이다.


태권도는 도태권이다. 도라고 하는 철학이 없는 현실의 태권도라면 끝없이 자본주의와 능사를 키울 수는 있다. 태권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이번 정부의 태권도 육성 사업에서 도라고 하는 정신세계를 바로세우지 못한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큰 병폐를 자초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21세기 지구촌의 방향은 이 우주의 진실을 향한 화해와 평화이며 각각의 존중 된 공존이다. 태권도 또한 인류로부터 환영받으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온 인류가 원하는 상생의 방향으로 함께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태권도는 짧은 시간동안 빅뱅의 발전을 통하여 외형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제는 태권 도복을 입은 사범 관장뿐만 아니라 유관단체 모두가 스스로를 점검하며 회광반조 하여 희망을 키우기 위한 위대한 반성은 물론 태권도 철학과 함께하는 멋진 미래를 함께 만들며 공유해야 할 것이다.


진실로 태권도인으로 살아감에 있어 지나친 물욕이나 명예욕은 바람직한 태권도 철학과는 괴리가 있다. 만약 태권도인으로써 탐진치에 깊이 들어 있다면 이참에 자신을 되돌아보며 스스로를 점검하여 우공이산의 삶과 마주 해 봄은 큰 의미가 될 수 있겠다.


태권도인의 여정에 겉모습은 치장하여 사람들에게 그럴 듯하게 보이며 살아 갈 수는 있지만 양두구육의 어리석음이 있다면 그 단체와 집착하는 본인만 모를 뿐 어찌 천하를 가려 속일 수 있겠는가!


문화체육부 장관께서도 언급 한 태권도의 위기의식처럼 균형 잃은 난파선과 같은 태권도의 현실을 우리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직시해야 한다. 그래도 희망을 꿈꾸는 것이 우리가 가는 태권도의 길이다.


앞으로 태권도는 국정과제로의 추진을 기점으로 반목과 갈등을 벋어나 진정한 무도의 파사현정에 이르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정의를 세우기 위해 반대쪽이나 사악함을 깨트리는 것으로 오해 된 파사는 어리석음의 결과이다.


무도계에서 실제 율극봉 금강권의 체험을 해 보거나 무도인이 아니더라도 수행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분들의 체험과 같이 자신의 사악함을 타파하여 나 밖의 모든 대상에 적이 없어 영원한 자유인의 지혜로움이 들어난다면 이것이 곧 진정한 태권 도인의 길이지 않을까 싶다.


이번 기회에 우리 모두는 태권도의 현실을 준엄하게 냉철함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그동안 철학이 부재함으로 늘 불편한 태권도가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는 국정 과제의 진행에 관심과 책임감을 함께 통감하며 바른 태권도 세우기에 적극 동참 하여야 한다.


한평생 천직으로 살아 온 태권도인으로써 정부와 문화체육부에 감히 당부의 말씀을 드린다.


색(물질, 문화)을 세운다 해서 공(정신, 마음)이 달라지지 않음이 우주의 묘법이다. 국내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 온 인류의 심신 건강을 위한 정부의 작은 시작은 매우 뜻 깊은 일이며 부디 국내 뿐 아니라 세계를 위하여 뜻하는 목적과 성과가 희망차게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하지만 태권도를 이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바르게 세운다는 거시적 목표에만 집중되어 요란하게 밖으로만 치중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시대에 태권도를 활 발발하게 살려내기 위해서는 태권도의 생명줄 인 태권도의 정신철학과 정신문화의 중심 뿌리를 재정립해야 함에 정부는 게을리 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도 태권을 구체적으로 수련하는 지도자와 수련생을 위한 인성교육 프로그램으로 재탄생 시켜야 함은 마땅한 일이며 이 시대 태권도계의 큰 과제임을 자명하게 받아들여 주길 간절히 거듭거듭 간청한다.


작은 촛불이 온 산하대지를 태우듯 작은 촛불이 큰 힘 되어 온 인류의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에 도움 되는 융성한 태권도의 세계 문화가 꽃피우길 바라며 태권도인으로 살아가고 있음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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